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탁의 기사 (문단 편집) == 설명 == 원탁이란 100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둥근 탁자를 칭하는데, 앉는 위치에 지위의 구별이 없는게 특징이다. 앉는 사람들을 총칭해 '원탁의 기사들'이라 부른다. 원탁의 기사 중에는 아서 왕 본인도 참석한다. 원탁은 원래 식탁(食卓)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 문학 작품이 그리는 중세 귀족이나 왕족의 식탁은 대단히 계급적이고 정치적이었다. 왕이나 그 집안의 가장이 상석에 앉은 다음, 남은 참석자들이 지위에 따라서 자리를 잡고 앉게 되어있 던것이다. 아서왕은 자신의 식탁에서 이러한 위계를 없애버린다. 최고도 최하도 없으며, 모두 동등하고 오직 '동료' 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원탁에 앉은 왕과 일반 기사들은 서로 동등하게 발언권을 가지게 된다. '원탁토의'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게 된다. 아더 왕 전설에 원탁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프랑스인 바스가 12세기 중반에 쓴 <브뤼 이야기>에서다. 바스는 몬머스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를 번안해 답습하며 원탁 이야기를 추가했다. 아더가 바위에 꽂힌 성검을 빼내어 브리튼의 왕이 되고, 침략자인 색슨족을 쳐부술 때 즈음의 일이었다. 아더를 따르는 기사와 제후들이 어느 날, 식사 시간의 자리 순서 때문에 다툼을 시작했다. 이 언쟁은 이윽고 서로에게 검을 뽑아드는 싸움으로 변하고 결국 사상자까지 내고 말았다. 아더 왕은 이 사건에 가슴 아파하면서 이후부터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을 때, 순위에 차이가 나지 않는 원형의 테이블을 사용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렇게 해서 커다란 원탁이 제작되었다. 그 이후부터 아더 왕과 기사들은 상하의 차이 없이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더 이상 싸움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켈트의 전승설화에 기원을 둔 것으로, <브뤼 이야기>의 작가 바스 역시 이것을 브리튼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스는 '서열 없는 원탁을 만듦으로써 분쟁을 막았다'는 전승을 아더 왕의 공적으로 삼고, 이것으로 그에게 덕망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브뤼 이야기>로 인해 13세기 프랑스에는 [[아서 왕 전설]]이 크게 유행한다. 음유시인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서 왕]]이나 새롭게 이야기되는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읊으며 다녔다. 예전에는 독립된 전승의 주인공이었다가 어느새 아서를 따르는 원탁의 기사들 중 한 명에 포함되는 영웅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음유시인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관록을 붙이기에 원탁의 기사라는 칭호가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아서 왕의 궁전에 출입하는 기사들의 숫자가 늘어났으며 아서는 무수한 영웅들을 거느리는 왕 중 왕이 된다. 이후 <[[아서 왕의 죽음]]>에서는 본디 그의 아버지 우서의 물건이었으며, 우서의 시대에도 원탁의 기사가 있었으나 우서의 죽음이후 원탁은 기네비어의 아버지가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아서와 기네비어의 결혼선물로 아서의 원탁이 된다. 단, 원탁의 기사의 인원 편성은 작품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파일:external/fc07.deviantart.net/knights_of_the_round_table_by_paladin_errant-d37cg3p.png]] 여러 버전에서 확인된 이름들을 다 합치면 이렇게 늘어난다. 심지어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 왕의 죽음]]》에서는 '150명의 원탁의 기사'라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새로 원탁의 기사가 들어오는 경우는 기존의 기사가 죽었을 때뿐이며, 전임자보다 약한 기사가 자리에 앉았을 경우 아서 왕의 조언자이자 [[마법사]]인 [[멀린]]이 걸어놓은 마법에 의해 자리에서 튕겨나간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또한, 원탁에는 '위험한 13번째 자리' 한 군데가 비어 있어, '선한 기사'가 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앉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오기 전에 다른 이가 앉으면 그는 즉사한다(...). 이는 유럽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로서,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가 [[최후의 만찬]] 때 13번 째로 앉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유다를 예수의 13번째 사도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12사도|사도는 항상 12명]]이었다.] 13번째 자리에 앉는 자격은 '유다의 죄가 덮어질 정도로 선한 인품을 가진 자'여야만 했고 이 선한 기사의 최종 선발자는 [[갤러해드]]가 된다.[* 이 설정은 [[성배]]와 더불어 시간이 흘러 아서왕 전설에 기독교의 색채가 진하게 스며들었단 사실을 알려준다.] 아더 왕 전설이 유행했던 영국에서는 모든 왕과 귀족이 전설에 따라 나름대로의 실제 원탁을 제작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윈체스터 성의 원탁이다. 이것은 직경 6미터, 중량은 1.25톤의 테이블로, 중앙에 '켈트, 브리튼, 그리고 로마의 지배자 아더'라고 씌어 있고 원주를 따라 열두 명의 기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벽에 걸려 있어서 다리는 없지만 다리가 있던 흔적으로 구멍을 가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